엉뚱한 발명하기 첫 번째.
말하면 바로 해명해 주는 티셔츠 : “그게 아니고요”를 자동으로 말하는 옷.
세상엔 '해명할 타이밍'이 너무 늦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웃었을 뿐인데 "왜 비웃냐"는 소리를 듣고, 늦잠 자고 헐레벌떡 나갔더니 “또 술 마셨냐”는 오해를 사고, 정말 딴생각하다가 한숨 한 번 쉬었을 뿐인데 “삐졌냐”는 질문을 받는 상황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건 환상이고, 말해도 오해받는 경우가 더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한 해명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해명의 타이밍이란 게 그렇다. 바로 하자니 핑계 같고, 나중에 하자니 변명 같고, 안 하면 괜히 미안해지고 억울해진다. 특히 직장이나 학교, 혹은 친구 관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오해들은 해명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말투 하나, 타이밍 하나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해명 티셔츠'다. 이름하여 "이건 그런 게 아니에요!" 시리즈.
이 티셔츠는 음성 인식 기능을 탑재해 착용자의 말과 상황을 분석하고, 즉각적으로 앞면에 LED로 적절한 해명을 띄워준다. 이를테면 갑자기 웃으면 "방금 떠오른 밈 생각 중이에요", 눈치를 보다 고개를 숙이면 "혼나고 있는 거 아니고요, 그냥 피곤해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면 "화난 거 아닙니다. 물 마시러 가는 중이에요" 같은 메시지가 자동 출력되는 식이다.
세상이 무뚝뚝한 사람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아니, 억울하게 말 못 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아이디어는 출발했다. 티셔츠가 나를 대신해 "그게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 더 평화로워질지도 모른다.
해명 티셔츠, 진짜 만든다면 어떻게 작동해야 할까?
자, 상상을 좀 더 구체화해 보자. 이 티셔츠가 단순히 말 몇 마디 인식하는 수준이면 곤란하다. 오해란 게 단어 하나로 생기는 게 아니라, 뉘앙스, 표정, 상황,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즉, 해명 티셔츠는 AI 기술과 감정 분석 알고리즘, 그리고 패션 센스까지 겸비해야 한다.
먼저, 음성 인식. 이 티셔츠에는 소형 마이크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사용자의 톤과 말투를 분석해 “해명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혼잣말로 “하...” 하고 한숨을 쉬었을 때, 이게 단순한 피로의 표현인지, 분노인지, 체념인지 구분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황 분석이다. 이건 스마트폰과 연동된 GPS, 캘린더, 심지어 날씨 정보까지 활용해 문맥을 파악한다. 월요일 아침, 비 오는 날, 회의가 막 끝난 직후라면 '기분이 안 좋을 확률'이 높다. 이걸 인식하고 티셔츠는 미리 "오늘 날씨 탓이에요. 전 누구한테도 화난 거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거다.
그리고 표현 방식도 중요하다. 앞면의 디스플레이는 너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충분히 읽히게 구성되어야 한다. 폰트는 친근하고 귀여운 스타일이어야 하고, 이모지도 함께 표현할 수 있어야 감정 전달이 더 정확하다. “배 아파서 그래요😓” 같은 식이다.
마지막으로, 이 티셔츠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므로 디자인도 다양해야 한다. 유니클로처럼 심플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해명 모드 ON' 시 자동으로 빛나는 패턴이 등장하거나, 소매에서 살짝 진동이 오는 등 오감형 기술이 포함되면 훨씬 실용적이 된다.
요컨대, 해명 티셔츠는 단순한 농담 같은 아이디어 같지만, 그 속엔 인간관계의 복잡한 구조와 기술의 융합이 담긴 진지한 상상이 깃들어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옷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까?
생각해 보면 ‘해명’이라는 건 참 이상한 감정이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상대를 공격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지거나, 오해받을까 걱정되는 일들이 많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말수가 줄고, 결국엔 표현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갈수록 비대면, 간접적인 소통에 익숙해지고 있다. 문자는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보완하고, 영상 통화는 배경 필터로 상황을 가리고, SNS에서는 '좋아요' 하나로 온갖 감정을 대신 표현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기술은 오히려 사람 간의 오해를 더 쉽게 만들어버렸다.
누군가 말없이 앉아 있는 걸 보고 ‘기분 나쁜가?’라고 짐작하거나, 단답형 답장을 보고 ‘화났나?’라며 괜히 마음 졸이는 일도 생긴다.
이런 세상에서 '해명 티셔츠'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심리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의도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 오해 없이 살고 싶은 마음, 혹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조용히 외치고 싶은 절박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 옷이 하나의 '사회적 선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오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다”는 작지만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방식. 말보다 옷이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 시대에, 해명 티셔츠는 말 없는 외침이자, 새로운 언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옷으로 말하고, 표정 대신 문장을 입는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명 티셔츠는 그 첫 단추일 뿐이다. 그 단추를 누군가 만들기 전까지, 우리는 이 상상으로나마 억울함을 조금 덜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