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발명하기. 다섯 번째
시간을 되감아주는 후회 버튼 : 누르면 방금 한 말&행동만 되돌릴 수 있는 한정 리셋 버튼.
누구에게나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수없이 많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몇 초만, 혹은 하루만이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그 선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의 다툼에서 했던 말 한마디, 놓쳐버린 기회의 순간, 혹은 단순한 감정에 휩쓸려 저지른 행동 하나. 그 순간들은 지나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떠올라 우리의 감정을 흔든다.
이처럼 후회는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동시에 가장 개인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후회하지 않고, 누군가는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신을 괴롭힌다. 그만큼 후회는 단순한 감정보다 복합적이고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가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바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후회 버튼’이라는 상상이 등장한다. 이 버튼은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물리적인 장치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그때로 돌아가 다시 마주 보고 싶다는 욕망의 구체적인 형상이다.
물론 실제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상징적으로나마 그런 버튼이 있다면 우리는 마음속 후회를 조금이나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기회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받아들이는 ‘정서적 되돌림’의 시작이다.
누군가에겐 이 버튼이 단순한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위로가 된다. 후회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때 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들을 상상 속에서나마 다시 해볼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
후회는 잘 마주하면 회복의 출발점이 되고, 나아가 더 나은 삶을 위한 연료가 될 수 있다. ‘후회 버튼’은 그런 마음을 위한 상징이자, 작은 치유의 계기다.
시간을 되감는 기술,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린다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수많은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백 투 더 퓨처’, ‘어바웃 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같은 작품은 모두 시간 되돌리기를 통해 실수나 후회를 바로잡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그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에 강하게 공감하고, 자신도 그런 버튼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간은 일방향으로 흐른다. 아무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개념이 우리에게 시간의 상대성을 말해준다고 해도,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후회 버튼’은 단지 상상 속의 유희일까?
그렇지만 기술은 이미 이 상상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메일에도 '보내기 취소' 기능이 있다. 워드 프로그램에도 ‘실행 취소’ 버튼이 있고, 스마트폰에는 지운 사진을 복원할 수 있는 ‘휴지통’ 기능이 있다. 이 모두는 사용자의 실수를 줄이고 후회를 줄이기 위한 기술적 대응이다.
즉, 완전한 시간 되돌리기는 아니지만, 특정 상황을 ‘되감기’하는 경험은 이미 우리 일상에 녹아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감정 인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감정 상태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시스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용자의 심박수, 뇌파, 표정, 목소리의 떨림 등을 종합 분석해 현재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특정 상황에서 후회할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사전에 경고해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라는 알림은 일종의 ‘후회 방지 기능’이다.
이처럼 후회 버튼은 기술적으로도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상황적 실수를 줄이고 재선택의 기회를 주는 정서적 장치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되감기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후회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술은 분명 가능하다. 후회 버튼은 ‘과거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후회하지 않는 미래’를 만드는 기술이 될 수 있다.
후회를 없애는 대신, 잘 다루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꼭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감정에 휩쓸리며, 매 순간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후회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후회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후회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감정이다.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성찰을 유도하고 성장으로 이끄는 중요한 통로다.
심리학자들도 후회를 통해 자기 인식을 높이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학습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후회는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내면의 길잡이인 셈이다.
‘후회 버튼’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버튼은 후회를 지우는 장치가 아니라, 후회를 안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시간이 실제로 되돌아가지는 않지만, 마음속에서 ‘그때’를 다시 떠올리고, 그 감정을 정리하고, 다음엔 다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마치 심리 상담에서 트라우마를 반복 재현하며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 장면을 후회한다. 그때 용기 내어 진심을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회 버튼은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도록 시도하게 만든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라도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표현하고, 후회를 덜어내는 경험은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현실과 상상을 가리지 않고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후회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후회를 잘 마주하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시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는 있다.
‘후회 없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회를 잘 다루는 삶’이다.
후회는 인생의 그림자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후회 버튼은 그런 삶을 위한 아주 작은, 그러나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다.